삼라만상은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물과 불이 만나 천지자연이 생겨났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물이 된다. 그런데 물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수소와 산소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물을 마실 때, 물을 마시는 것이지 수소와 산소를 마시는 건 아니다.
우리가 목이 마를 때, 수소와 산소를 아무리 마셔도 목마름은 가셔지지 않을 것이다.
만남은 이렇게 전혀 다른 존재를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성 성분들을 절대로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에는 그 존재를 이룬 것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가족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들도 자신들을 전혀 희생시키지 않고,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
‘희생’이라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다른 존재와 온전히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흙과 온전히 만나 많은 밀알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 밀알들 안에 하나의 밀알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이 세상에 사라지는 것들은 없다. 끝없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삼라만상의 만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람(혹은 사물)을 만나고 나서 허전한 이유는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그에게 자신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부로 다른 존재와 만나면, 그것은 만남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을 던저 전혀 다른 존재로 재탄생해보아야 한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윤동주 시 <바람이 불어> 중에서
시인은 바람과 온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바람일 무슨 말을 하는지를.
끝내 그는 바람의 소리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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