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욕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욕망이라고 하면 왠지 천박하고 유치한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을 성인이 된 지금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ㆍ유명해지고 싶다.

ㆍ부자가 되고 싶다.

ㆍ돈을 물 쓰듯 써보고 싶다.

ㆍ이성에게 인기를 얻고 싶다.

ㆍ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

ㆍ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싶다.

ㆍ최고급 승용차를 타보고 싶다.

ㆍ명품 시계를 구입하고 싶다.

ㆍ도심의 최고급 주택에서 살고 싶다.

ㆍ실패하고 싶지 않다, 창피 당하고 싶지 않다. 지고 싶지 않다,

    바보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다. 추한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ㆍ내게 망신을 준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

ㆍ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버지에게 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 아내에게 대우를 받고 싶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여러분 역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욕망’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말자. 천박하거나 유치해도 상관없다. 우선 자신의 욕망을 이해한 뒤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안심해도 된다. 결코 천박하거나 유치한 상태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천박한 ‘욕망은 반드시 바람직한 비전’으로 바뀐다. 욕망을 추구해도 천박하거나

유치한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ㆍ자신을 받아들일 것

ㆍ타인을 신뢰할 것

ㆍ타인에게 공헌할 것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생물이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여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이 세 가지 조건을 추구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망’을 구체화하면, 그 앞에는 반드시 ‘타 인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타인에게 공헌할 수 있는 비전’이 존재한다. 물론 출발 지점은 욕망이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출발할 수 있다. 욕망이 없으면 출발지점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출발 자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천박한

욕망이거나 유치한 욕망이라도 상관없다.

 

욕망의 반걸음 앞에는 반드시 ‘바람직한 비전’이 있으니까.

 

 

-오히라 노부타카 <하루50초 셀프토크> 중에서

 

새들은 떨쳐낼 수 있어도 인간은 패대기치지 못하는 그것,
수묵빛의 저 그늘 한 채를 중력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실존의 버거운 중량 같은.
육신의 저 후미진 안쪽, 컴컴한 지층 어디쯤에 끈적하게 들어차있을
온갖 욕망의 현현과도 같은.

- 최민자, 수필 '그림자의 질량' 중에서


질량이 없는 그림자.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림자.
그러나 누군가 두고간 그림자는 실제보다 길어서,
매일 느낌이 다른 빛깔과 소리와 냄새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것을 발자취라고, 그리움이라고 되뇔 때가 있습니다.
여운이 남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의 됨됨이의 질량, 그리움의 무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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