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기예보를 잘 보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면

비를 맞다가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사고,

날씨가 따뜻해졌는지도 모르고 겨울에 입던 파카를 입고 출근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기예보는 물론, 미세먼지 수치까지 꼼꼼히 챙긴다.

 

반팔만 입어도 더운 여름에 겉옷과 우산을 챙기는 습관도 생겼다.

너무 센 에어콘 바람이 당신을 괴롭힐 때 막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당신에게 내 우산을 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당신이 나를 바꿨다.

 

비오는 날에는

하나 있는 우산을

당신에게 주고

나는 비를 쫄딱 맞았는데,

 

내 마음은

이렇게 뽀송뽀송할 수 있을까.

 

- 최대호 저, <너의 하루를 안아줄게> 중에서

 

 

재봉틀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한숨을 쉬는 내게 말했다.

눈으로 보면 갈 길이 멀고 완성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 순간에도 손은 묵묵히 일을 한다고.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일은 끝나 있다고.

 

돌아보니 언제 다 뽑나 고민했던 잡초 제거도 꾸준히 하다 보니

밭이 깔끔해졌고, 얼마나 더 가야 되나 싶던 한라산도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었다.

 

눈은 생각보다 게을렀고 겁이 많았다.

눈이 손에 있었다면 세상에 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불평하거나 겁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손이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일들을 늘 이렇게 부지런히 마무리해주기를.

한쪽 손으로 다른 쪽 손을 포근히 안아 주었다.

 

- 유희경 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중에서

 

 

자신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거나 우쭐해하는 사람이 있다.

또, SNS에 소개된 다른 사람의 집이나 자동차 등

겉모습만 보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남의 삶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자.

그저 당신이 그리는 삶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면 된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보석 사이에서 더 비싼 보석을 찾는 게 아니라,

평범한 물건 속에서 찾고 싶던 물건을 찾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바쁘고 성실하게 움직여

찾고 싶은 물건도 찾고 가끔 보석도 찾는다.

 

그 예쁜 보석의 가치를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게 삶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막에서는 보석보다

물 한 모금이 더 가치 있다고.

 

- 최대호 저, <너의 하루를 안아줄게> 중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는 건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건

에베레스트에, 심연에,

우주 끝에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내 곁에, 일상에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언어 속에

그 모든 답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늘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는 순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 이애경 저, <마음을 비워둘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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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트로커>는 이라크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팀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폭발 사고로 분대장이 사망한 팀에 새로운 분대장 제임스가 온다.

그는 꽤 독선적인 인물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굴 때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상관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몇 개인가? 해체한 폭탄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다던 제임스는 873개라고 대답한다.

감탄한 상관은 "어떻게 해야 폭발물을 그렇게 해체할 수 있는 건가?"라고 묻는다.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안 죽으면 됩니다, 대령님."

 

경력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살아남은 사람만이 말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안 죽으면 된다.

이것은 영웅적인 동기와는 상관이 없다.

 

경력이란, 업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려낸 선이다.

돌아보면 길이 생겨있지만, 걷는 순간에는 길이 아닌 곳을 헤쳐가며

발을 내딛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 원점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헤맨 순간들조차 돌아보면 그럴듯한 역사의 일부가 되어있다.

 

살아남는 데 성공해야 어디든 도달해있는 법이다.

물론 살아남기에만 골몰하면 재미없고 능력없는 고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체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인 편이 낫다.

 

- 이다혜 저, <퇴근길의 마음> 중에서

 

"이런 사람은 당장 손절해야 합니다."

 

SNS에서 '인간관계에서 피해야 할 인간 유형'에 관한 콘텐츠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제법 쏠쏠하게 나오는 조회 수와 댓글 수를 보면 꽤나 호응이 좋은 것 같다.

나 또한 궁금해서 이런저런 관련 영상들을 보았다.

저마다 피해야 할 인간 유형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인간 유형이 있었다.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우울한 감정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전염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몇 번 들어주다 보면

듣는 이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한다는 것이다.

 

피해야 할 인간 유형에 매번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들어가는 걸 보다 보면,

사람들이 참 몰인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은 대체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건가 싶다.

내가 지금 당장 너무 우울한데, 대부분이 나를 기피한다면

씁쓸함을 넘어서 너무나 괴롭지 않을까?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이 한없이 우울할 거라고 지나치게 속단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결코, 인간의 자아는 단일하지 않다.

한 개인이 가진 감정은 굉장히 복합적이며 다양하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이모르 저, <잘될 일만 남았어> 중에서

 

"너, 정말 많이 힘들겠다. 나도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네가 그렇게 힘들어 하니까 나도 같이 힘든 것 같아."

 

이렇게 상대가 여러분과 함께 같은 느낌을 느낀다고 해주면,

참 고마운 친구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동정의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경우

우리는 점점 그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느새 상대방이 표현하는 동정의 마음은 피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우리의 깊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얕은 느낌을 가지게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동정하는 친구의 위치와 우리의 위치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위치는 웅덩이 위 안전한 곳에 있고,

우리의 위치는 웅덩이 아래 비참한 현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안전한 웅덩이 위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위험한 곳까지

스스로 내려와 준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든든한 동반자를 얻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공감은 바로 이런 상호적인 연대감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공감의 과정이 이렇게 상대방의 웅덩이로 천천히 내려가서

결국 감정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서는 일이라고 한다면,

너무 급하게 내려가서도 안 됩니다.

천천히 웅덩이 아래로 내려가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결국 웅덩이 밑바닥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부둥켜안고 우는 일입니다.

웅덩이 바닥에 있는 구심력 감정과 온건한 감정을 공감할 때

뜨거운 치유의 눈물이 흐르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 권수영 저,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중에서

 

견디기 힘들 땐 멈춰도 괜찮습니다.

현실적으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잔고를 마련해둔 상태라면

결승점만 보고 달리던 트랙을 살짝 벗어나는 것도 큰 도움이 돼요.

일을 쉰다고 인생이 멈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길고, 조금 쉰다고 뭐 대단히 도태되는 것도 아니에요.

 

트랙을 벗어나야 운동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깁니다.

그제야 결승점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지요.

세상엔 다른 종류의 트랙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라볼 여유와 힘도 생기고요.

그렇게 발견한 작은 힘으로 뭔가 다시 하고 싶어질 때,

일에 대해 갖고 있던 양가적 감정이 조금은 산뜻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 정우성 저, <산책하듯 가볍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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