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은 대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상대의 발언을 잘 들어보면 그 나름대로 납득이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서로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상대의 발언을 중간에 자르거나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끝까지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싸움이 일어났을 때 아메리칸 인디언들처럼

마음의 토킹 스틱을 들고 상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상대가 말을 마치면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풀렸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으므로

또다시 침묵으로 돌아가

잠잠히 서로를 느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현명합니다.

 

- 다니하라 마코토 저,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매우 따뜻한 가을날 한적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마치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는 분명히 ‘비밀과 진리’가 있는 것 같다.

 

다만 나의 오감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에 진리나 비밀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움직이면서 주어진 삶을

그날 그날 애쓰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라고 생각한다.

 

- 차영철 저,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이가 들수록 해 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만 후회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재커리 스코트

 

두려움 이야말로 당신의 재능을 막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가 단순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안전만을 추구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즉 그들은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듣게 될 가장 슬픈 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연설가인 ‘비키 히츠게스’는 이 말을 다른 방법으로 바꿔 묻습니다.

 

당신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대단히 후회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싶은가.
'아니 내가 그때 그렇게 해서 지금 더없이 기뻐'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가?

 

실천과 도전의 성공의 원칙을 따르면

당신은 훗날 삶을 돌아보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때 그렇게 행동했기에 지금 행복해."

 

당신은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 지그 지들러 저, <포기하지 마라, 한번뿐인 인생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시, <풀>

 

 

 

첫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다.

(존중의 의미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라는 의미다.

(관심은 사랑의 표현이며 구체적인 표현은 이름 부르기다.

부르는 이름 속에 당 신의 감정도 함께 드러난다.)

 

셋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의미다.

(이름을 불러주는 격려를 통해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게 한다.)

 

넷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나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습니다'라는 의미다.

(소통은 신뢰와 상호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이름 부르기는 소통의 출발점이다.)

 

- 고경미 저, <참 쓸모있는 말투>

 

 

꼭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나만 알아도 되는 ‘나를 위한’ 즐거움이 필요해요.

 

사실 꽃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실용적이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꽃을 사고 꽂아 두는 행위에서

저는 '나를 위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 행위를 존중하면서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이니까요.

 

굳이 ‘꽃'이 아니더라도 각자에게 나를 위한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그 무언가가 화분이 될 수도, 음반이 될 수도,

아니면 어떤 경험일 수도 있겠죠.

 

누구나 어떤 것이든 남보다는 '나'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나를 위한 즐거움을 누리면 좋겠어요.

 

- 오디너리스쿨 저, <지금은 나를 위해서만>

유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항상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서 그런지, 예쁘고 순한 언니나 귀염둥이 막내아들을 제치고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야 했죠.

공부를 잘하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든, 애교가 많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성인이 되어서도 떠나지 않고 자신을 계속 괴롭혔어요.

 

더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에 기대던 아이가 아니라

훌쩍 큰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압박감은

어른이 된 저에게 또 다른 성공을 요구해요.

남들이 대단하다고 해 주는 직업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

그런 성공을 이루기 위해 저는 또 압박감에 시달리죠.

 

게으르면 안 돼.

낙오되면 안 돼.

 

이런 압박감으로 시간을 허투루 쓰거나, 효율이 높지 않은 일을 하는 날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스트레스가 컸어요.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요.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해.

책도 많이 읽어야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해.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바라보니, 스스로 만들어 둔 촘촘한 인생 시간표에 따라,

스스로 정한 인생 기준에 따라, 쫓기듯 삶을 맞추고 있었어요.

'무언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은 내가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말거리는 무언의 압박이었어요.

나의 존재 이유가 무언가 되어야 분명해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제가 듣고 싶었던 한마디는 이런 것인지도 몰라요.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 자체로 충분해."

 

- 오디너리스쿨 저, <지금은 나를 위해서만>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어머니의 웃음'이다.

백합꽃처럼 하얀 웃음이, 그 온화한 미소가 몹시 그립다.

그리워서, 너무 보고 싶어서 아버지도 나도 엄마에게로 간다.

작년부터 엄마 산소를 가꿔 드리고 싶어

백합꽃과 국화, 여러 야생화 들을 심기 시작했는데

올해에는 꽃잔디를 심고 근처에 향이 좋은 라일락나무도 심었다.

 

이렇게라도 흙을 밟고 만지니 엄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잠시 잔디에 앉아 수첩에 꽂아둔 고운 엄마 사진을 펼쳐 보았다.

단아하고 젊음의 기운이 넘치는 이 시절 엄마 모습이 나는 참 좋다.

 

좀 더 웃게 해드릴걸. 이 예쁜 미소 지켜 드릴걸.

엄마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며 다시 씨익 웃었다.

 

"엄마. 난 괜찮으니까 이제 엄마가 웃으세요."

 

나의 속삭임에 엄마는 벚꽃처럼 향기롭게 웃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렇게 함께 웃는 이 순간. 인생이 더욱 고맙다.

온 세상, 온 생명이 고맙고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즐겁다.

후회를 남기지 말고 함께 살아 있을 때

더 많이 웃기를 무조건 행복하기를 바란다.

 

- 신현림 에세이,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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