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을 열어 보니
책 대신 은행잎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너무 예뻐서 책은 다 꺼내 버리고
은행잎을 가득 담아 온 아이. 어머니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요즘 유치원 가는 길에 동백나무 아래에서 오래 머뭅니다.
뚝뚝 떨어지는 꽃잎이 아까워서 가방 속 책을 다 꺼내고
동백꽃 잎을 주워 담느라 바쁘거든요.

당신은 “책은 어디다 두고 꽃잎을 담아 왔니?” 라고 야단을 치는 어른인가요?
아니면 “네가 꽃을 그렇게 사랑하니 나도 참 기쁘다.” 라고 머리를 쓸어 주는 어른인가요?

하염없이 땅에 떨어지는 꽃잎을 가방에 가득 담아 온 아이의 마음.
아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을 일깨워 주는 순수의 시인이며,
무엇이 더 소중한지 알려 주는 삶의 철학자입니다.

 

-송정림 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중에서

 

고향 집 열쇠는 늘 문간 옆 납작돌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 아무 때나 집에 와도 문을 열 수 있게 그곳에 놓아둔 것이죠. 아버지가 일 나간 새에 객지 나간 아들, 딸이 오게 되면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금방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난 지금도 열쇠는 늘 그 자리에서 자식들을 기다립니다.

 

지금 집 대문은 전자식입니다.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쉽게 대문을 열 수 있습니다.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번거로움을 없애 좋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식구들은 저마다 문 열리기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운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문에서 들리는 띠-띠-띠- 하는 짧은 신호음이 초인종을 대신하고 있죠. 그 소리를 듣고 현관까지 나가기도 전에 외출했던 사람은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종종 옛것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사람 소리를 듣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시간. 안에서 나올 사람을 그려보기도 하고 언제 나올지 상상해보기도 하는 단 몇 초의 시간. 사람을 기다리고 마중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가요? 가끔은 기계문명에 그런 사소한 즐거움마저 뺏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느림의 여유가 그리워집니다. 아직도 서랍엔 열 수 없는 열쇠 꾸러미가 있습니다. 물건을 찾다가 마주치면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그것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재건축사업으로 이전에 살던 곳을 헐게 되었습니다. 열 수 없는 열쇠, 그야말로 쓸모없는 열쇠가 되었는데도 그것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같이 했던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집에서 아이들은 유치원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경쟁이라는 힘든 세상 속으로 나가기 전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한 집이었죠. 열쇠 구멍을 통해야만 들어갔던 집. 이제 그 자리를 찾을 길 없지만 대신 그리움의 꾸러미를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든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위안의 열쇠 꾸러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출처: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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