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작거나 목소리를 내기 힘든

고령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는 "네? 뭐라고요?" 하고 여러 번 되묻는다.

그럼 상대는 말할 기분이 사라진다.

진료 현장에서도 왕왕 있는 일이다.

병원 직원이 고령의 환자에게 "알레르기 있어요?" 하고 묻는다.

환자가 '아, 알레르기는..." 하고 작은 소리로 답하는데,

그럴 때 "네? 뭐 라고요?" 하고 짜증스런 어투로 되물으면

환자는 "없어요' 하고 서둘러 답해 버린다.

 

고령자에게는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그러면 되묻지 않고 들을 수 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수신 음량을 높인다.

고령자를 상대하는 데 익숙한 요양직이나 의료직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거리를 좁힌다.

나도 바퀴 달린 의자를 사용한다. 환자의 목소리가 안 들릴 때

앉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좁히면 그 전보다 음량이 23% 증가한다.

거리를 좁히는 것은 '당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표시가 되기도 한다.

상대가 마음을 열어 준다.

 

반대로, 다른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므로 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차분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경우 의사가 진료 차트를 적으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입을 다무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손을 멈추고 상대를 보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 입을 다물었던 사람도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 히라마쓰 루이 저,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16가지 방법>

 

 

나에게는 한발 물러설 곳을 마련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일을 결국은 이루어 내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내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았다.
내 마음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의 중간 어디쯤 적당히 제 몸을 걸치고 살았다.

그건 스스로를 자책하며 공격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이자 대비이기도 했다.
그런 자조적인 비겁함은 금방 몸에 익숙해져 버려서 관성의 법칙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살뜰히 보살펴 주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딜수록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제 한발 물러설 곳을 마련해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능력보다 더 멀리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려 한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이루고 해내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곳을 마련해 두어야겠다.

 

– 김해안 <시선이 닿는 모든 순간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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