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거나 우쭐해하는 사람이 있다.

또, SNS에 소개된 다른 사람의 집이나 자동차 등

겉모습만 보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남의 삶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자.

그저 당신이 그리는 삶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면 된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보석 사이에서 더 비싼 보석을 찾는 게 아니라,

평범한 물건 속에서 찾고 싶던 물건을 찾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바쁘고 성실하게 움직여

찾고 싶은 물건도 찾고 가끔 보석도 찾는다.

 

그 예쁜 보석의 가치를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게 삶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막에서는 보석보다

물 한 모금이 더 가치 있다고.

 

- 최대호 저, <너의 하루를 안아줄게> 중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는 건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건

에베레스트에, 심연에,

우주 끝에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내 곁에, 일상에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언어 속에

그 모든 답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늘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는 순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 이애경 저, <마음을 비워둘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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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트로커>는 이라크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팀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폭발 사고로 분대장이 사망한 팀에 새로운 분대장 제임스가 온다.

그는 꽤 독선적인 인물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굴 때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상관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몇 개인가? 해체한 폭탄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다던 제임스는 873개라고 대답한다.

감탄한 상관은 "어떻게 해야 폭발물을 그렇게 해체할 수 있는 건가?"라고 묻는다.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안 죽으면 됩니다, 대령님."

 

경력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살아남은 사람만이 말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안 죽으면 된다.

이것은 영웅적인 동기와는 상관이 없다.

 

경력이란, 업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려낸 선이다.

돌아보면 길이 생겨있지만, 걷는 순간에는 길이 아닌 곳을 헤쳐가며

발을 내딛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 원점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헤맨 순간들조차 돌아보면 그럴듯한 역사의 일부가 되어있다.

 

살아남는 데 성공해야 어디든 도달해있는 법이다.

물론 살아남기에만 골몰하면 재미없고 능력없는 고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체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인 편이 낫다.

 

- 이다혜 저, <퇴근길의 마음> 중에서

 

"이런 사람은 당장 손절해야 합니다."

 

SNS에서 '인간관계에서 피해야 할 인간 유형'에 관한 콘텐츠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제법 쏠쏠하게 나오는 조회 수와 댓글 수를 보면 꽤나 호응이 좋은 것 같다.

나 또한 궁금해서 이런저런 관련 영상들을 보았다.

저마다 피해야 할 인간 유형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인간 유형이 있었다.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우울한 감정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전염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몇 번 들어주다 보면

듣는 이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한다는 것이다.

 

피해야 할 인간 유형에 매번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들어가는 걸 보다 보면,

사람들이 참 몰인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은 대체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건가 싶다.

내가 지금 당장 너무 우울한데, 대부분이 나를 기피한다면

씁쓸함을 넘어서 너무나 괴롭지 않을까?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이 한없이 우울할 거라고 지나치게 속단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결코, 인간의 자아는 단일하지 않다.

한 개인이 가진 감정은 굉장히 복합적이며 다양하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이모르 저, <잘될 일만 남았어> 중에서

 

"너, 정말 많이 힘들겠다. 나도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네가 그렇게 힘들어 하니까 나도 같이 힘든 것 같아."

 

이렇게 상대가 여러분과 함께 같은 느낌을 느낀다고 해주면,

참 고마운 친구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동정의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경우

우리는 점점 그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느새 상대방이 표현하는 동정의 마음은 피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우리의 깊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얕은 느낌을 가지게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동정하는 친구의 위치와 우리의 위치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위치는 웅덩이 위 안전한 곳에 있고,

우리의 위치는 웅덩이 아래 비참한 현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안전한 웅덩이 위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위험한 곳까지

스스로 내려와 준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든든한 동반자를 얻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공감은 바로 이런 상호적인 연대감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공감의 과정이 이렇게 상대방의 웅덩이로 천천히 내려가서

결국 감정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서는 일이라고 한다면,

너무 급하게 내려가서도 안 됩니다.

천천히 웅덩이 아래로 내려가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결국 웅덩이 밑바닥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부둥켜안고 우는 일입니다.

웅덩이 바닥에 있는 구심력 감정과 온건한 감정을 공감할 때

뜨거운 치유의 눈물이 흐르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 권수영 저,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중에서

 

견디기 힘들 땐 멈춰도 괜찮습니다.

현실적으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잔고를 마련해둔 상태라면

결승점만 보고 달리던 트랙을 살짝 벗어나는 것도 큰 도움이 돼요.

일을 쉰다고 인생이 멈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길고, 조금 쉰다고 뭐 대단히 도태되는 것도 아니에요.

 

트랙을 벗어나야 운동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깁니다.

그제야 결승점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지요.

세상엔 다른 종류의 트랙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라볼 여유와 힘도 생기고요.

그렇게 발견한 작은 힘으로 뭔가 다시 하고 싶어질 때,

일에 대해 갖고 있던 양가적 감정이 조금은 산뜻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 정우성 저, <산책하듯 가볍게> 중에서

 

단벌 숙녀 마틸다 칼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할 때, 옷 고르는 시간을 빼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에 더 집중하게 되며, 스스로를 의식할 필요도 없어진다고 한다.

단벌 숙녀 마틸다가 옷 선택으로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실제로 그녀가 옷을 고르고 입는 시간은 45초라고 한다.)

소유가 적을수록 불만이 줄어든다. 반대로 소유하면 할수록 욕망이 커진다.

심지어는 사방이 물건으로 둘러싸여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더 소유하길 원한다.

때로는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비싼 옷이 옷장에 걸려 있기에 입어 줘야 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사도 바울의 가르침, 자족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자족은 가진 것이 별로 없을지라도,

넉넉히 가진 사람처럼 만족할 수 있는 상태이다.

다 가졌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현대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아무것도 없는 방까지는 아니어도, 무소유까지는 아니어도,

'어설픈' 미니멀리스트 정도는 되고 볼 일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 아름다운 절약을 선택해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자족하며 사는 것은 소소한 기쁨을 위해 잠시 일을 내려놓는 것이다.

숲을 산책하며 명상하는 것이다. 해질 녘 석양을 보며 감사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 만족 하는 것이다.

 

- 심플빈 저, <단순하게 산다는 것> 중에서

 

 

‘돈을 버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직업이라는 건 그저 선택의 문제예요.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심지어 성공한다는 건

판타지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꾸준한 회사생활로 일단의 성공을 쟁취하는 것도 무척 어렵지요.

일의 세계를 그 둘로 간단히 나눠버릴 수도 없습니다.

일이라는 단어의 결은 무한에 가까워요.

우주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너무 진지해지지 마세요.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에 속지 마세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세상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꾸준히 빈틈을 찾으세요.

내면에 집중하며 외부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마세요.

일은 그 첨예한 틈, 공들여 해낸 것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 어딘가에서

언젠가 빛날 거라 믿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조금 더 먼 곳에 깃발을 꽂아두려고 해요.

 

그래야 오래 달릴 수 있으니까. 인생은 길고

첫 직장이나 두 번째 직장, 20대에 선택한 직업이

평생을 결정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

 

- 정우성 저, <산책하듯 가볍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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